구비구비

마을에 길은 둘이다. 마을에서 거슬갑산 승지봉을 들렀다가 다시 마을 산책로로 돌아내려오는 거슬재 옛길과 이효석 소설『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장돌뱅이들이 평창장, 대화장, 봉평장에서 주천장, 제천장, 충주장으로 넘어가던 길, 거슬치 길이 그것이다. 예전 마을 앞 도로가 비포장일 때는 버스보다 고개 넘어 걸어다니는 사람이 더 빨랐던 시절도 있었단다. 거슬재 옛길은 가마골농박에서 시작한다. 마을을 지나 승지봉을 지나 다시 마을로 돌아내려 오는데 3시간 정도 걸린다. 거슬치 길은 마을 남단에 있는 연봉정에서 시작해 거슬치를 지나 옥녀봉, 매봉, 오도재, 거슬갑산 정상을 넘어, 승지봉을 지나 마을로 내려간다. 마을에서 시작해서 반대로 넘어도 된다. 대하리 앞 도로에서 길은 시작된다. 연봉정에서 시작해 완만한 산길을 따라 낙엽송과 잡목림이 우거진 길을 따라 걷는다. 도로가 발달하기 전 평창에서 영월과 제천으로 이어지던 길목인 거슬치재 정상이 나온다. 거슬치재에는 옛날 고개를 걸어 넘나들던 장꾼들이 조성했다는 성황당터가 남아 있어, 마을 주민들이 성황당을 복원했다. 이어지는 등산로는 이마가 닿을 만큼 가파른 오르막이다. 가파른 오르막과 완만한 내리막 능선을 따라 수령이 100년은 족히 됐을 소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모양도 각양각색으로 아름답다. 힘든 것도 잠시 잊는다. 곳곳에 희귀목인 굴참나무도 눈에 띈다. 오르막길을 다 오르면 전망이 탁 트인 거슬갑산 정상 옥녀봉(해발 590미터)이 기다리고 있다. 옥녀봉 정상에 서면 발아래로 평창강이 굽이쳐 흐르고, 멀리 평창읍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맑은 날에는 미타면 청옥산까지 겹겹이 펼쳐진 산맥들이 장관을 이룬단다. 또 남쪽으로는 평창읍 대하리 들판과 영월군 주천면 판운리 지역도 한눈에 들어온다. 옥녀봉에서 땀을 식히고 내려오는 길은 능선을 따라 매봉과 오두산, 승지봉이 이어진다. 각 봉우리에 설 때마다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다양하다. 특히 매봉에서 보는 평창강 전경은 한반도 지형의 모습과 닮았다. 들판과 산을 끼고 U자형으로 굽이치는 모습이 아름답다. 내려오는 길옆으로 소나무와 참나무 군락지가 이어진다. 거슬갑산 정상부터는 진달래가 무리지어 자란다. 봄이면 붉은 진달래가 장관이다. 또 박달나무, 벚나무 군락 등 다양한 나무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승지봉 주변에는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우거져 마지막 발걸음을 붙잡는다. 마을로 내려온다. 평창강 강변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걷는다. 더위와 피로가 강바람을 타고 날아간다.